가장 안쪽에 ‘나’를 적은 박스를 그립니다. 박스 하나를 조금 더 큰 박스 하나가 둘러싸는 형태로 총 4개의 박스를 더 그립니다. 각 박스 안에는 ‘나’와 가까운 순서로 사람들의 이름을 씁니다. 이때 규칙은 두 가지입니다.

• 작은 박스부터 15명, 30명, 45명, 60명을 쓴다.
•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을 우선적으로 쓴다.

총 150명을 적게 됩니다. 이는 ‘던바의 수’에 근거합니다.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제안한 개념으로 한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 숫자가 150명이라는 주장을 골자로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적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SNS와 메시지 앱을 통한 채팅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죠. 당장 저만 해도,

• 오래되고 친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올해만 연락을 못한 사이
• 애초에 온라인 모임으로 만나 꾸준히 만남을 가진 사이

이런 관계들이 있으니까요. 다만 둘 중 한 명을 더 작은 박스에 넣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직접 대면한 경우 가점을 주자는 얘기입니다.

저는 각 박스를 이정도로 구성했습니다.

1. 나
2. 애인, 가족, 매일 연락하는 친구
3. 연 3~4회 약속을 잡고 만나는 친구, 친한 직장 동료
4. 현 직장 동료, 종종 만나는 전 직장 동료, 원래 3번에 있다가 조금 소홀해진 사람
5. 명절에만 보는 친척, 어쩌다 만난 선후배 or 직장동료, 각종 모임 멤버, 친구의 애인, 애인의 친구

(1번 박스는 생략하고) 사실 가장 가까운 15명인 2번 박스를 채울 때는 고민할 게 별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 머리속으로 떠올려도 될 겁니다.

3번 박스(30명)와 4번 박스(45명)을 채울 때 재밌었던 점은

• ‘얘는 나랑 그렇게까지 가깝진 않지’라고 생각하며 4번에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 그런데 30명이 꽤 많습니다. 적을 만큼 적고 나면 더 적을 사람이 없습니다.
• 4번 박스에 적어놓은 사람 중 3번 박스로 옮겨야 되는 사람이 ‘반드시’ 생깁니다.
• ‘아, 얘가 나랑 의외로 이만큼 가까웠네?’ 싶습니다. 그 사람이 왠지 달리 보이죠.

4번 박스(45명)와 5번 박스(60명)을 채울 때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4번 박스와 5번 박스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많기도 하고 관계의 밀도가 드라마틱하게 다르지 않아서 작은 계기로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 이건 사람마다 다를 텐데요. 총 150명을 쓰는 게 의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만난 사람(=친구의 애인, 애인의 친구, 각종 모임 멤버)까지 동원할 줄이야.
•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이 부분이 상당히 다르게 적힙니다. ‘일로 만난 사이’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사람들이 연말모임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회고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혼자서
• 2개 항목

겨우 이렇게만 진행해도 상당히 넓은 범주에서 한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 더 알찬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심지어 저는 일상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애인과 함께 했으니 말할 것도 없죠.

‘올해의 OO’을 어떤 식으로 돌아보면 이런 효과를 얻게 될까요? 요즘 다양한 회고 템플릿을 구경하며 아이데이션을 하고 있는데요. 좋은 레퍼런스를 알고 계신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를 읽고 독서모임을 했습니다. 모임원은 총 3명인데요. 흥미롭게도 셋 모두 자발적으로 부교재(?)를 선정해 함께 읽고 왔습니다. 덕분에 대화가 더 풍성해진 듯합니다(실제로 평소보다 1시간 더 이야기를 나눔).

• 장지향 <최소한의 중동수업>
• 이세형 <중동 라이벌리즘>
•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살면서 딱히 접점도 없었죠(애인이 교회를 다닌다거나). 성별, 학력, 지역 등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 하나로 종교를 바라봤습니다.

종교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80억명이 넘는 개인들이 같은 ‘인류’로서 행복해지려면 보다 많은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어쩌면 종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앞서 말한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에서 성별 다음으로 보편적일 수 있는, 그러니까 그만큼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요소가 종교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세계 인구의 약 32%가 기독교 인구이고 약 25%가 이슬람교 인구라고 하니까요.

당연히 전도를 열심히 해서 모두가 같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개인에게 도덕적 규범과 생활 지침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안정과 결속을 강화하는 ‘종교의 작동 방식’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는 얘기죠.

재밌는 건 제 의견을 들은 모임원들이 각각 다른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끌고 온 점인데요(두 분 모두 즉석에서 떠올린 것이라 어쩌면 원문과 약간 다를 수도 있습니다).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는 무신론자 이반이 ‘세계가 평온하려면 이 세계 전체를 교회화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다른 무신론자들과 토론하는 장면을 끌고 옵니다. 예로 든 것은 ‘범죄자 교화’에 관련된 부분인데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선 제도보다는 종교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종교의 역할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 신형철의 <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에서는 ‘인간은 신 없이도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봐야 한다’라는 생각을 적은 부분을 끌고 옵니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 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임에 가기 전 미리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쓴 노트는

• 종교 이해하기(LINK)

• 퇴사했습니다. 어차피 커리어는 난장판이니 앞으로 크게 변할(변해야 할) 삶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막상 새해가 밝으니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채용서비스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지원서도 쓰고(탈락) 면접도 보고(탈락) 커피챗도 좀 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처음의 결심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고민(=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뭐 해 먹고 살 것인가 생각하는 것)을 좀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 재테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늦었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로 늦었다. 그렇다고 아주 손놓아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알음알음 해왔던 것들이 있지만 정석(?)으로 저의 금융생활을 되짚어보니 난 정말 금융맹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퇴사하는 바람에 수입이 끊어졌지만 다행히 실업급여를 받습니다. 물론 유의미한 액수를 저축할 만큼은 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지출 면에서 여러가지 조정이 필요합니다. 매일 돈에 대해 생각합니다.
  
  
• 설 연휴를 끼고 런던 여행을 다녀옵니다.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일정 조정으로 예약한 전망대를 가지 못하고(무료 예약이었고 다른 곳을 갈까 싶음), 대한항공 오토체크인 시스템을 몰라서 돌아오는 비행기 연석을 잡지 못하고(출발 48시간 전에 낚아채야함), 올해 1월 8일부로 eta 비자를 받아야 하는 걸 몰랐고(그래도 늦지 않게 알고 금방 함) 등등 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만 역시 기대됩니다. 간만에 꼬까옷도 샀습니다. 아껴야 되는데(?).
  
  
• “엄마! 제발요! 떡갈비 한 봉지만 더 사세요!”라며 조르는 어린 저를 보면서도 부족한 생활비에 차마 사줄 수 없었던 장면이 아른아른해서 회사 급식으로 나오는 떡갈비를 먹을 수가 없다는 엄마의 얘기가 재밌었습니다. 고작 3천원 정도밖에 안 했던 거 그냥 사줄걸, 하시더라고요. 실제로도 저는 냉동떡갈비를 보면 한이라고 해야 하나…그런 느낌이 듭니다. 뭔가 슬프면서도 웃겼습니다. 우리집 형편이 객관적으로 어땠더라. 자기연민 쫙 빼고 기록해두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