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고

2025. 2. 17.

🌊 회고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어떻게든 되겠지

2025년을 맞은 지도 이제 50일 쯤 됐다. 그동안 크게 두 가지를 했다.

취업 활동
런던 여행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까.

1. 취업 활동

채용 플랫폼을 자주 들락거렸다. 여러 회사의 공고를 살피며 지난 경력을 정리했다. 몇 군데엔 입사 지원을 했고 그 중 일부는 면접까지 이어졌다. 지원 여부와 별개로 커피챗을 하기도 했다.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각 절차에 임하며 여러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중 해결이 시급한 것은 아주 기초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업무 중 어려움에 부딪힌 경험과 그것을 해결한 방법’과 같은 것들.

사실 지원자가 내놓아야 하는 답변은 구성이 전혀 복잡하지 않다.

해당 회사와 포지션에 대한 의지와 역량을 정확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례로서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는 것

의지와 역량이 적절한지, 경험의 퀄리티가 기준 이상인지 판단하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심지어 지원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상대방이 필요한 걸 내가 갖고 있다면 논리적으로 말해주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내가 쓰면서도(말하면서도) 구성부터 엉망인 답변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의지와 역량에 대한 설명이 부정확하고
경험이 설득력 있지도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이것은 발견된 여러 문제점 중 하나다.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문제’가 뭘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의 커리어에 확신이 없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하면

‘Connecting the dots’에 실패했다. 과거 경험을 일정한 콘셉트의 자산으로 바꾸지 못했다.
청사진이 불투명하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은 있으나 구체적인 ‘What, Why, How’가 없다.
현재 내려야 할 선택의 기준이 불확실하다. 과거를 이어갈 건지 미래를 향해갈 건지 정할 수 없다.

그래서 6개월 간 갭이어를 가지기로 했다.

애매한 상황에서 애매한 회사에 들어가는 건 애매한 상황을 연장하는 것에 다름아니며
수입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뭘 할 거냐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과거 경험을 일정한 콘셉트의 자산으로 바꾼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에 ‘What, Why, How’를 채운다.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만드는 선택지를 준비한다.

물론 걱정이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두 개.

애매한 회사에 들어간 것만 못한 애매한 공백기가 생길 수도 있다
생애소득과 미래자산을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더 크고 확실한 손해다.

이미 결심한 이상 안고 가야지 어쩌겠어.

여기까지 생각하고 취업 활동을 멈췄다. 채용 플랫폼 방문 주기도 줄였다(아예 그만둘 수는 없다. 관심 있는 회사 또는 직군의 채용공고만큼 내 커리어를 점검하기 좋은 레퍼런스가 또 없다).

그리고 런던 여행을 떠났다.

2. 런던 여행

생뚱맞게 웬 런던 여행이냐?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둥 여행을 대단히 특별한 경험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이 여행은 퇴사와 관계 없이 벌써 몇 달 전에 계획된 것이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타이밍이 맞은 거 런던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흔치 않은 고립의 시간에 기대를 걸었다. 스마트폰 없이 보내는 도합 26시간의 비행,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라는 환경에서 비롯되는 시간. 아무래도 멍때리기 좋겠지.

하지만 영감은 정반대로 찾아왔다.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을 덕분에 '매너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고객으로 맞는 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 시민들의 매너가 놀라웠다. 곳곳에서 받은 환대와 도움으로 며칠만에 이 도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보물 같은 경험이었다.

타인에게 베푸는 매너는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 자신이 여유가 있다
나 혼자만 잘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내 주변만 챙기면 된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는 걸 기꺼이 실행한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부차적이다. 내 나이가 이제는 만으로도 32세인데 모은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커리어는 이렇게 쌓아가야 하고 연봉을 높이려면 저런 기술을 익혀야 하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부차적이라는 것. 매너있는 사람이 돼야지. 올해는 그런 노력을 해야겠다. 이번 여행의 교훈.

자, 정리.

취업 활동 끝에 내가 현재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미션을 세웠다.

과거 경험을 일정한 콘셉트의 자산으로 바꾼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에 ‘What, Why, How’를 채운다.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만드는 선택지를 준비한다.

런던 여행 끝에 타인에게 매너를 베푸는 사람이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그 자신이 여유가 있다
나 혼자만 잘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내 주변만 챙기면 된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는 걸 기꺼이 실행한다

6월 말 결과보고서가 어떻게 나올지는 온전히 내게 달렸다. 화이팅.

▲ 어디로 가야 하죠

요즘 너무 런던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게 꽤 많았다.

일단 첫 번째로 올린 글은 터너와 로랭이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을 동경해 그의 작품 옆에 자신의 작품을 걸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윌리엄 터너 이야기를 통해

‘동경하던 인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미술 문외한이었던 내게도 어떤 새로운 지평이 열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쓸 계획인 것들은

어디서든 뛰고 있는 런던의 러너들
런던의 ‘호남식당’과 잉글랜드 브렉퍼스트
공공의 문화 접근성과 무료 입장 정책
의외로 좋았던 런던의 날씨
지구 반대편 팀을 응원하는 마음

한 달 뒤에는 베이징 여행을 간다. 그 전에 다 쓰는 게 목표.

일론 머스크가 나치라는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목표에 도달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워즐은 머스크의 나치 경례가 트럼프 행정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여부를 두고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4년이 될 거라는 말이다.

- 박상현, 오해받을 일(오터레터)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 읽은 책이 있군요.

요시미 슌야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크리스 밀러 <칩워>

계속 읽고 있는 책은

니콜 펄러스 <인류의 종말은 사이버로부터 온다>
파올로 휴이트 <게팅 하이>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은

대런 아세모글루 & 제임스.A.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임승원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기타 근황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전편 정주행 했습니다. 한참 연재 중일 때 만화책으로 봤었는데요. 당시엔 이야기 속에서 ‘거인 vs 인간’이라는 대결(선악) 구도가 명확했습니다. 사실 대결 구도라고 하기에는 인간 쪽이 압도적으로 무력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다소 불쾌해 하차했었는데요. 그 이후 전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며 완성도 역시 매우 높다는 평가를 보고 궁금해 하던 참이었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는 라이너 브라운입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와 <옥씨부인전>을 봤습니다. 중간에 좀 넘긴 부분도 있지만 얼추 다 봤습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다만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내세운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추영우 배우가 주요 인물로 나온다는 점도 있네요). 확실히 요즘 나오는 콘텐츠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슈퍼히어로인 듯합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 이왕 몰아서 본 김에 두 드라마에 대한 비평을 좀 읽으려고 합니다. 이것 저것 하느라 미뤄뒀는데 생각난 김에 투두에 넣어야겠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다녀왔습니다. 세종시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1시간 정도 가볍게 둘러보기 좋습니다. <이름의 기술>이라는 기획전시를 진행 중인데요. 볼 거리도 볼 거리지만 곳곳에 마련해둔 참여 장치가 꽤 재밌습니다. 구색 맞추는 용도는 아닌 듯합니다.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있었는데요. ‘어떻게든 생각하게 만들어야 예술’이라는 제게 ‘한순간 멍한 상태로 만드는 예술도 있다’라고 애인이 말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즐겁네요. 종종 전시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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