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인들의 언행으로 인해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이를테면 1차 탄핵을 부결시킨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이른바 ‘한-한(한동훈 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체제’를 대안이랍시고 내놓으며 한 말. 그는 “탄핵은 불확실성이 있다. 질서있는 퇴진이 더 나은 방안”이라면서 “민주당도 박근혜 탄핵 때 총리에 전권 맡기라고 했다”고 했다.
   
   
2. 법적 절차가 이미 마련된 ‘탄핵’이라는 제도를 애써 외면한 채 쥐어짜낸 궁여지책에 단순히 “질서있는”이라는 수식을 붙인다고 그게 정말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위헌적 비상 계엄 선포로 군대를 움직여서 국회와 선관위 등에 투입시키는 등 시민들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한 윤석열이 박근혜를 들먹이며 그 자리에 둬도 괜찮다고 보는 걸까?
   
   
3. 한국인의 문해력이 어쩌구 정치적 무관심이 저쩌구 하니까 이정도면 충분하다며 컨펌했을지도 모른다. 그 태만한 기획과 안일한 실행에 감탄을 마지않을 수 없다. 논쟁은커녕 조롱거리도 못 되고 사라질 안을 무려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나란히 서서 발표하는 꼴을 보는데 정말 화가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잔기술이나 부리고 싶은 건지.
   
   
4. 정치인은 말과 글을 다룬다. 단어 하나, 어미 하나를 교묘하게 매만져 특정 사안을 관철시키기도 하고 판을 뒤엎기도 한다. 상당히 고난도의 기술이다. 자칫 잘못하면 말장난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 신뢰를 핵심 자산으로 하는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처럼 수준 낮은 말장난이라니. 담화의 리스크를 체크할 역량조차 없던 게 아닐까.
   
   
5.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현실에 너무 화가 난다.
   
   
6. 모욕감은 씻어낼 수 없다. 반드시 흉터로 남는다. 먼훗날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하다가도 멈칫하고 한숨을 쉬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사태-비상계엄 선포, 해제 요구 결의안 불참, 1차 탄핵 부결, 이후 여당의 행보-는 많은 시민들에게 역사적인 모욕감을 남겼다. 이게 어떻게 돌아올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큰 역사의 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민간인을 영장 없이 체포하라, 국회 기능을 무력화하라, 이런 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수행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명령이 부당하다는 거는 느껴야 하고요, 그 명령의 부당성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민주국가의 군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겁니다. 본인 스스로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자격미달이라는 걸 스스로 밝힌 것이고 내란 주도 세력임을 자백한 겁니다. 나치 전범이랑 똑같은 겁니다.

- 박재현, “그날 밤, 가상의 적을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가 떠올랐다”(경향신문)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주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그러모았습니다.

• 241202-241215

장지향의 <최소한의 중동 수업>을 다 읽었습니다.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이쪽(?) 분야는 좀 더 파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공부를 해보고 현재 시점의 뉴스도 꾸준히 소비하면서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도 다 읽었습니다. 여성작가들의 글을 통해 서울살이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을 주제로 하는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있는데요. 아쉽게도 첫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조한혜정 작가의 책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한국의 여성과 남성2>에 수록된 <남성중심공화국의 결혼 이야기> 챕터를 읽고 이야기 나눴다고 하네요. 이것은 1990년대에 쓰인 글이었고 <달콤한 나의 도시>는 2000년대에 쓰인 글입니다. 소설의 배경 역시 2000년대 중반. 서울에서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여성 ‘오은수’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진부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떠안고 있는 고민거리, 일과 사랑! 사랑과 일! 그것을 겪어내며 살아가는 삶! 뭐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독후감은 따로 남기려고 합니다.

크리스 밀러의 <칩워>는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장지향의 <최소한의 중동수업>과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재미가 쏠쏠).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한 게, 중동과 반도체는 그 자체로 글로벌 뉴스의 중심에 자리한 이슈죠. 여기를 잡으면 세상 보는 눈을 확실히 더 넓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는 현재 6장까지 읽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헨리 해먼드의 연설 인용문입니다. 사실 ‘노예+제도’라는 단어에 담긴 전근대적이고 비일상적인 뉘앙스 때문에 그것은 마치 우리와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고틀만 놓고 보면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하자는 주장에는 ‘그렇게 벌어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은근히 깔려있죠. 이것은 ‘노예들 본인도 만족하고 있다’는 주장과 얼마나 다를까요?

해먼드의 연설 인용문은 “양심에 거리낌 없이 말씀드립니다.”라는 표현으로 끝납니다. 그가 진심을 담아 연설했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말했을 테죠. 하지만 그는 의원 그리고 주지사로서 권력을 갖습니다. 제도권 내 개인에게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와 같은 권력자는 자신의 양심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의심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지금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입니다.

아참, 특히 6장을 재밌게 읽었는데요. 기술은 그 자체로 다수의 번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주장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철도라는 기술이 영국과 인도에서 각기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례를 통해 그것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내용이라 인상깊었습니다. 물론 영국 내에서 일련의 복잡한 과정이 존재했고 그렇게 도달한 결과마저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땐 완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기도 합니다(여성의 소외 등).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도 읽고 있습니다. 아직 유대교 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서술 대상인 종교에 친화적인(?) 입장을 경계하며 읽고 있지만, 이 책 또한 장지향의 <최소한의 중동수업>처럼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던 여러 내용을 한번 정리해주는 느낌. 역시 두 번 읽어야 되는 책일 것 같긴 한데 말이죠.

니콜 펄러스의 <인류의 종말은 사이버로부터 온다>는 간만에 산 종이책입니다. 독서모임 때문에 샀는데 전자책이 나오지 않았더라고요.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구입했습니다(도서관에서도 찾기 어렵더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논픽션의 조건(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깔끔한 문장)을 두루 갖춘 책인 듯합니다. 물론 사이버 시큐리티라는 낯선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용어나 개념들이 바로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결하게 읽히는 건 기자의 개인기!

모임에선 두 가지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Q. ‘보안’과 ‘안보’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보안은 ‘안보라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일련의 행위라고 봅니다. 즉 안보는 보안에 비해 좀 더 높은 층위 + 넓은 범위에 적용되는 개념이고요. 따라서 보안은 개인이나 조직 단위에서 정보 또는 자산 등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안보는 그러한 단위를 포괄하는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정치적 또는 군사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사이버’와 연관된 이슈로는 주로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A.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박제’라는 단어와 연결할 만한 이슈들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마주하는 경우라든지, 유명인의 과거 언행이 현재로 소환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고, 불법촬영물 유포 범죄도 끊이지 않죠. 이러한 박제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파올로 휴이트의 <게팅 하이>는 지난 며칠 간 한 글자도 안 읽었네요. 딱히 덧붙일 얘기가 없으니 오늘은 대표곡인 Don’t Look Back in Anger를 추천합니다. 후렴구 가사에 나오는 Sally는 딱히 누군가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 노엘의 인터뷰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찾아보니 이런 에피소드도 있네요. 노엘이 작업할 때 그 파트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리암이 “지금 ‘So Sally can wait’이라고 한 거야?“라고 물었고, 노엘은 아니라고 답했는데, 리암이 “그럼 그렇게 불러”라고 해서 탄생한 가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