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벨문학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수도 없이 쏟아졌지만…그래도 노벨문학상인데요. 저마다 자신만의 기록 하나 어딘가에 남겨둘 가치가 충분한 이벤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 있잖습니까. “그때 그 일이 벌어졌을 바로 그 시간에 너는 뭐하고 있었니…?”라고 물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오는.
   
   

2. 스마트폰 화면으로 속보가 전해질 때 저는 애인과 막 차린 저녁 밥상 앞에 앉은 참이었습니다. 몇몇 언론사의 앱 푸시 메시지가 뜨는 것만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죠. 그런데 애인이 말합니다. “한강이 노벨상 탔다는데?” 진짜? 메시지를 다시 봤고 “와…이건…정말…속보네…”라고 중얼거리며 숟가락을 떴습니다.
   
   

3. 참고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 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미밥 / 소불고기 / 얼갈이배추된장국 / 배추김치 / 오이고추 / 김. 이렇게 쓰고 보니 급식 메뉴 같아서 오히려 뭔가 유니크한 느낌이 드네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대사건에 대한 기억 매개체로 안성맞춤입니다. 아마 저는 이렇게 답하겠죠. “그때 내가 뭘 먹고 있었냐면…”
   
   

4. 사실 저는 한강 작가의 팬이기는커녕 문학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약간 들뜨더군요. 순수 텍스트만으로 세계 무대의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에 올랐다는 사실에 감동했달까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흔히 가질 수 있는, 잘 쓴 글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과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평소에 비하면 훨씬 큰 규모로 밀려오는 듯했습니다.
   
   

5.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는 한국어 소설을 다른 문화권의 다른 언어를 쓰는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상대적인 규모로 미뤄볼 때 ‘form 한국어 to 외국어’ 번역의 의미는 단순히 책 한 권, 작가 한 명을 알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하나가 한국 문학, 더 나아가 한국어로 쓰인 모든 것, 그러니까 한국 문화를 인류 문화에 본격적으로 동기화하는 밑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한강 작가가 열어젖힌 문으로 무엇이 들어올까요? 혹은 그 문으로 우리는 무엇을 내보여야 할까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나갈 것들입니다.
   
   

6.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수상자 선정 발표 이후 한강 작가의 작품이 100만부 정도 판매됐다고 하는데 그 중 전자책은 기껏해야 5만부라는 점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문학의 본질인 이야기를 소비한다는 점에서는 책이나 전자책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요. 아무래도 ‘읽는 맛’은 전자책이 종이책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상징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이므로 물성이 필요한 걸까요? 혹은 아직도 전자책을 책으로 받아들이긴 여전히 좀 낯선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전부 고려하더라도 이렇게나 비중이 적을 일인가. 전자책 시장(=소비자 규모)은 정말 손톱만하구나 싶습니다.
   
   

7. 저는 한강 작가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시간>을 읽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라는 유명한 문장에 끌려서, <흰>은 마침 짧은 분량의 책 한 권을 읽고 싶었던 차에 눈에 들어와서, <희랍어시간>은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돼서. 언젠가(가까운 시일은 안 될 것 같네요)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이 두 책을 읽은 이유는 ‘노벨문학상을 받았길래’가 되겠네요. 이것 참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성취입니다. 한강 작가님 만세.
   

영국 런던이나 중국 베이징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콘텐츠 추천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제목이 ‘추천’으로 끝나서 추천해주는 글인 것 같지만 사실은 추천 받는 글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런던 여행과 베이징 여행을 계획하게 된 사연과 각각에 관련된 콘텐츠를 추천 받는 이유에 대해 썼습니다.

2024 용금맥(용산용문시장 금빛 맥주) 축제 후기를 썼습니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무려 3년째 열리고 있는 용금맥 축제를 다녀왔는데요. 사실 이정도로 핫할 줄은 몰랐지요. 꿀팁 후기!…는 아니고 그냥 제 (소소한 불평불만 비중이 높은) 소회입니다.

풀칠 194호에 에세이를 썼습니다. 제목은 습관을 팝니다입니다. 기술이 발전해 개개인이 각자의 습관을 손쉽게 사고 팔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미니 픽션입니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습관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도 좋을 것 같네요. 흠.

정기구독 형태의 유료 텍스트 콘텐츠는 무엇이 돼야 하나라는 글을 썼습니다. 마지막까지 유료 구독을 유지하던 뉴스레터를 해지(무료 버전은 받고 있음)하면서 ‘정기구독 형태의 유료 텍스트 콘텐츠’에 쓰는 돈이 0원이 됐습니다. ‘나는 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는 과정을 기록한 결과입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움파룸파들라는 글을 썼습니다. 자기만의 ‘콘텐츠(=지식, 정보, 경험, 관점 등)’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팔기 좋게 알맞은 형태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React, D3, 서버리스 핸드북 등 여러 개발 도서와 온라인 강좌로 수익을 낸 Swizec Teller의 이야기"를 메모 형식으로 전하는 권정혁 님의 글에서 글감을 따왔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은 진실을 보거나 보여주기 쉽지 않잖아요.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나는 요즘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고 있어’라고 고백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꺼내기 쉽지 않지만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문학이 다루면, 그걸 읽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읽고 있는 소설 속 사람이 되어보며 자신으로부터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반복하면 자아에 틈이 벌어지면서 투명하게 자신을 직시하는 경험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소설은 여분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를 연결하는 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유태, [한강 단독 인터뷰] “고단한 날,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주 동안(사실 1주는 통으로 생략)에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그러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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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그 사이에 다 읽은 책은 없고요(...).

파르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거의 다 읽었습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자리에서 풀어지기 시작한 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조금씩 면을 이뤄나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들끼리 겹치고 뭉치며 결국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는 형태로 소설이 구성돼 있습니다. 각자 그리고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소재는 (제목에 드러나듯) ‘언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언어’라기보다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통함과 통하지 않음’을 다룬다고 생각하는데요. 왜 제목이 언어의 ‘무게’일까 하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결말에 이르면 알게 될까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샹뱌오의 <경계를 넘는 공동체>는 잠깐 멈춘 상태입니다. 10월 초 연휴 때 생각보다 독서 진도를 빼지 못 해서 제 기준 독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이 책을 읽는 것을 뒤로 미뤘습니다.

마이클 루이스의 <고잉 인피니트>는 초반부에는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속도감 있게 쭉쭉 읽었는데 중반부에서는 조금 처지네요. FTX 파산이라는 메인 이벤트가 기다리는 후반부에는 다시 속도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올로 휴이트의 <게팅 하이>를 빨리 읽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제가 웬만하면 종이책은 휴대하지 않거든요. 집에서 쉴 때만 읽을 수 있다보니 아무래도 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달 들어서는 장강명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재밌습니다. 소설가가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쓰는 것이지만 그게 단순히 ‘나의 경우’에 대해서 무난하게 풀어주는 썰에 그치진 않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취재를 통해 주변부로 확장시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됩니다. 그런 흔적을 발견하는 경험이 아주 즐겁습니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장강명 작가가 앞으로 ‘충분한 분량의 논픽션’을 더 많이 써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논픽션의 조건(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깔끔한 문장)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작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장강명 작가의 글에는 쾌감이 있습니다. 아주 중독적인. 끊이지 않고 공급 받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큽니다. 물론 저따위의 바람으로 움직일 분은 아니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