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아시스의 노래들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코트 커베인의 환생이 더 빠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공공연하게 돌 만큼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오아시스 재결합(=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의 화해)의 성사가 계기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들의 2025년 투어 일정에 대한민국 서울이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에 대한 기대감 또한 한껏 치솟는 중이죠.
   
   

2. 제가 처음 오아시스를 접한 시기는 2007년입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로 해외축구 보기 시작한 세대’였던 저는 막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EPL)에 입문한 상태였는데요. 축구 팬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팀 관련 자료가 올라오곤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오아시스, 정확히는 노엘과 리암을 알게 됐습니다. 맨유의 라이벌 팀 맨체스터시티의 가장 유명한 광팬으로 말입니다.
   
   

3. 다음해 맨시티는 그 유명한 만수르를 구단주로 맞이합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전통 강호들만큼, 아니, 그 이상의 위대한 팀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죠(실제로 현재 맨시티는 유럽 최고 팀 중 하나가 됐고요). 이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게 바로 노엘과 리암의 반응입니다. 맨시티의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이들의 반응은 그 자체로 밈으로 소비됐으니 말입니다.
   
   

4. 같은 시기에 저는 음악 취향을 만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한국 힙합을 베이스로 다양한 음악을 찍먹하고 있었죠. 찍먹 범위가 해외 음악으로 넘어갔을 쯤 저는 왠지 ‘근본’에 해당하는 음악에서 시작해 어떤 계보를 따라가며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단계별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었을까요?). 그리고 뭐 아는 게 없던 제가 판단하기로 해외 음악의 근본은 ‘비틀즈’였죠.
   
   

5. 애석하게도 당시 멜론에서는 비틀즈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2016년에 스트리밍이 가능해졌네요). 어둠의 경로를 이용하진 않았습니다. 대단한 양심의 소유자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하나의 플랫폼에서 벗어나는 걸 귀찮아하는, 그래서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의 근거가 되는 유저 성향을 그때부터 갖고 있었나봅니다. 물론 그 콘텐츠가 무려 비틀즈이긴 한데…
   
   

6. 비틀즈를 대체할 만한 아티스트를 찾아봤습니다. 데뷔부터 ‘제2의 비틀즈’로 불렸다는 ‘오아시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랑 리암 갤러거 거기? 그렇습니다. 제게 오아시스는 맨시티와 비틀즈라는 사막을 거쳐 겨우 닿은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땐 이미 갤러거 형제가 대판 싸우고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한 후였죠. 팬들이 들으면 기가 찰 테죠. 무려 오아시스인데…
   
   

7. 이견없이 명반으로 꼽히는 1집과 2집은 물론 제 귀에는 3집 역시 앞선 두 앨범만큼 훌륭했습니다. 특히 혹평 속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정작 노엘은 또 싫어한) ‘Stand By Me’는 3집은 물론 오아시스의 모든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2집에서는 ‘Champagne Supernova’, 1집에서는 ‘Married with Children’입니다. 갑자기 단어 하나가 떠오르지 않나요? 홍대병.
   
   

8. 3집 수록곡을 최애로 꼽은데다 그나마 언급하는 1, 2집 수록곡이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이 아니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음악에 대단한 조예가 있지도 않으면서. 저도 제가 웃깁니다. 물론 제가 고른 노래들이 묻혔다거나 저평가됐다고 하기엔 대단히 큰 히트를 치긴 했습니다. 그래도 굳이 좋아하는 걸로 그것들을 내세우는 건 좀 오바인 것 같단 말이죠.
   
   

9.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남들 다 아는 것보다는 바로 옆자리에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 걸 선호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남들 다 아는 것의 바로 옆자리라는 건 그 또한 그만한 유명세가 있다는 얘기거든요. 비틀즈가 아니라 오아시스, 돈룩백인앵거가 아니라 스탠드바이미. 뭐 이런 식으로. 흠. 너무 하이레벨에서 사례를 제시하니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긴 하네요.
   
   

10. ‘웨이팅하는 맛집 옆집도 충분히 맛집’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부류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다양한 규모와 층위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이야기를 포괄하는 세계관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건데요. 서포터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대와 세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한 이야기, 다양성과 확장성을 이루는 첫걸음에 대한 이야기 등 무궁무진합니다.
    
    

11. 방금 언급한 것들은 천천히 하나씩 풀어갈 기회가 있겠죠. 그냥 제가 열심히 사유하고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저는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혹은 저와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에 이런 주제들을 툭툭 던져 한 줌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죠. 마침 다가오는 10월에는 이런저런 약속이 꽤 잡혔습니다. 잘 활용해봐야겠네요.
    

"그런 거는 일기장에나 써라" 에서 '그런 거'에 해당하는 것들 모음집에서는 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피드 게시물 또는 스토리를 포함해 무작정 휘갈긴 생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많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해였거나 착각인 경우가 있다. 우리는 편견도 많다. 섣불리 판단한다. 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좀 알겠다 싶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허공에 떠 있는 먼지들을 보면서 바닥을 판단한다. 어쩌면 바닥은 생각보다 아주 깨끗할지도 모르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 천사일지도 모르고, 나의 절친이 나를 배신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 모른다는 생각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 김중혁, 기억이 사라져도 남기고 싶은 문장(까탈로그)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주 동안(사실 1주는 통으로 생략)에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그러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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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909-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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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의 <야망계급론>과 더그 복 클락의 <마지막 고래잡이>는 다 읽었습니다. 간단한 후기는 여기에 남겼으니 궁금하시면 살펴봐 주셔요. 참고로 두 권 다 추천입니다.

추석 연휴 때 노트북과 전자책 단말기를 깜빡하고 들고 가지 않는 바람에 읽던 책을 못 읽고 본가 책장에 꽂혀 있던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를 읽었습니다. 후루룩 끝냈네요. 훌륭한 책의 인상적인 단락을 발췌했고 거기에 덧붙이는 이동진 평론가의 감상으로 구성된 짧은 글을 모은 책입니다. 솔직히 좋지 않을 리가 없죠. 옛날에 그어둔 밑줄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즘 빠져든 독서경험(=한 가지 주장 혹은 이야기를 최소 책 한 권 분량으로 전개하는 과정에 올라타는 것)과 달라서 크게 임팩트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 장강명의 <아무튼, 현수동>은 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네를 기반으로 하되 그 위에 가상의 도시 ‘현수동’이라는 레이어를 얹어서 작가가 지향하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요. 그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짧아서 2~3일만에 읽은 것 같습니다.

파르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는 속도를 내 읽고 있습니다. 3주 뒤에 독서모임을 하거든요. 솔직히 말해 파스칼 메르시어가 필명인지도 몰랐고(본명은 피터 비에리), 그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라는 것도 몰랐습니다(추천 받고 묵혀둔 책). 그런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알아보니…예. 그렇더군요. 몰라 뵈었습니다. 여튼 문장이 참 좋습니다. 퇴근 후에 주황색 조명을 켜고 1인용 소파에 누워 배경음악 없이 천천히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내용과 통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작중 인물의 대사나 사유가 낮은 수준은 아닌데 그걸 전달하는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샹뱌오의 <경계를 넘는 공동체>를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원저우 출신 상인들이 베이징 한복판에서 자리 잡은 과정을 담아낸 책입니다. 저장촌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불법 매대 몇 개에서 시작해 베이징 저가의류의 생산판매기지로 변모했는데요. 저자는 학부와 대학원 재학 시절 이곳을 드나들며 생생한 목소리를 취재했습니다. 분량은 그렇다 쳐도 내용적으로도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조금씩 읽어나가는 중이지만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래도 지적허영심을 채우는 역할만큼은 탁월하게 수행합니다. 나 이런 책도 읽는다…잘난 척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듭니다. 흐흐.

위 책을 읽다가 지쳐서 속도 높여 읽을 책을 찾다가 마이클 루이스의 <고잉 인피니트>를 골랐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전기입니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 유명한 <머니볼>, <빅 숏>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처음 샘을 만났을 때 그는 ‘암호화폐의 왕’이었는데요. 저자는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되면서 전기를 쓰기 위해 약 1년 간 밀착 취재를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FTX 파산이라는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죠.

전기를 읽을 때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성공의 요소가 된다. 실패한 사람의 경우는 그 반대다’라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을 읽다보면 그 태도를 시험 받는 느낌이 듭니다. <고잉 인피니트>에서 묘사하는 샘의 천재적인 모습이나 기상천외한 행동, 뛰어난 발상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밑줄을 그으려고 하다가도 멈칫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저는 이미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과와 떼어놓고 보면 그것은 매우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입니다. 결국 저는 어떤 것은 긋고 어떤 것은 그냥 넘깁니다. 왠지 저자가 의도적으로 이런 구성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경험만으로도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파올로 휴이트의 <게팅 하이>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현재 읽고 있는 책 중 유일한 종이책이군요. 오늘 레터에서도 언급한 ‘오아시스’의 전기입니다. 이 책에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오아시스가 누린 전성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작가는 1996년 1월부터 10월까지 틀어박혀 집필을 했다고 하네요. 책 앞머리에 들어간 작가의 말은 2014년에 쓴 걸로 나옵니다. 아마 원작이 그때 출간된 게 아닌가 싶고요. 한국에서는 2020년에 출간됐습니다. 출간 당시에 산 책의 포장지를 4년이 지난 이제야 뜯었습니다. 이 시간들 사이에 오아시스는 참 많은 일을 겪었네요. 해체도 하고 재결합도 하고. 흥미롭죠? 앞서 <고잉 인피니트>도 그렇고,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전기는 또 이런 재미가 있네요.